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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빈민을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장 고통받는 존재, 가장 관심받아야 할 존재는 장애인이라
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데 돈을 쓰는 것, 그것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한 신학자가 규정한 성경의 정의를 그는 언급합니다. 바로 ‘약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끈
질긴 편애’가 성경의 뼈대라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 밑창에 놓인 사람을 끌어올리는 게 크리스천의
역할”이라며 “목사라면 이 사실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습니다.
손봉호 교수는 굉장히 검소한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70년대부터 꾸준히 환경운동에 가담했습니다. 나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원을 아끼고 소비를 줄
여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고, 그걸 내 삶에서 실천해 왔어요. 세수한 물은 변기에 넣어서 재활용하고
설거지한 물은 텃밭에 뿌립니다. 머리도 50년 넘게 아내가 깎아줬어요. ‘여행을 위한 여행’‘휴가를
위한 휴가’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손 교수가 이토록 아끼며 산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아낀 게 아닙니다. 돈을 쌓아둔다고 해서 그걸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고통
받는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는 데 쓰는 것, 그게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방법입니다.”
기부를 결심한 뒤 가족들은 모두 적극 동의했다고 합니다.
“우선 아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 신세는 지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이였습니다. 아들이 서울대에 다
녔는데 (내가 서울대 교수임에도) 내 차로 같이 학교에 간 적이 없어요. 아들은 IMF 외환위기가 닥쳤
을 때 벨기에 유학 중이었는데 훗날 들으니 생활고가 심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도와 달라는 편
지 한 통 쓴 적이 없습니다. 지독하게 독립심이 강한 아이입니다. 딸과 아내도 내 의견에 기꺼이 동
의했고요.”
마지막으로 기부에 담긴 성경적 가치에 대하여 손봉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경은 행복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약한 사람에게만 주목합니다. 돈
을 많이 버는 게 축복인가요? 진짜 축복은 돈을 올바로 쓸 때 생기는 겁니다. 자식한테 많은 돈을 물
려주는 게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인가요? 자녀를 존중한다면 자녀가 또래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
해 자신의 노력으로 나아가게 해줘야 합니다. 칼뱅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자로 만든 건 그를 통
해 가난한 사람을 돕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고, 루터는 ‘크리스천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래야 어
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어요. 즉 돈을 올바로 쓰자는 게 종교개혁 정신입니다. 돈을 많이
지닌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부를 쌓아 놓고 검소하게 사는 건 의미 없는 일입니다.”
※ 위 글은 국민일보의 2022-04-15 기사를 재편집한 것임을 알립니다.
2022년 5월 인천밀알보_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