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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이야기
30주년 제주캠프를 다녀와서
코로나19의 심술로 집안에 갇혀 지내던 밀알들이 오랜만에 희희낙락 제주도 나들이를 다녀왔
다. 현무암과 상록활엽으로 뒤덮인 이 섬의 탁월한 자연경관은 언제 만나도 새롭고 반갑다. 억새
풀 이엉으로 지붕을 얹고 구멍 숭숭한 현무암 덩어리를 쌓아 울타리를 둘렀던 정겹던 집들이 모
두 사라지고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제주를 찾을 때마다 느끼는 나만의 아쉬움은 아
닐 터이다. 그 돌담 위를 내달리며 울부짖던 바람 소리조차 현대문명에 밀려 기색을 잃은 듯 잠잠
하니 새삼 삼다(三多)의 흔적이 그립기만 하다. 사실 ‘불과 얼마 전“이라는 표현이 2,30년도 더
지난 세월을 뜻하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태에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약 한 시간쯤 하늘을 날아 제주공항에 도착한 밀알들이 감당해야 할 첫 번째 숙제는 늘 그렇듯
휠체어와의 씨름이다. 이 보행의자의 절대적 가치는 그야말로 유구무언이다. 그런 만큼 휠체어에
매달리는 장애인과 봉사자들의 열정은 차라리 눈물겹다. 승무원들과 봉사자들이 함께 어울려 치
박춘식 집사 워 두었던 휠체어를 다시 가져왔다. 거의 봉사자의 몸을 의지해 움직이는 중증 밀알들의 장작개
비 같은 경직성과 후들거림이 어떤 때는 고스란히 봉사자인 나에게 옮아 온 것처럼 느낄 때가 있
다. 하긴 나이 많음도 장애의 한 요인일 테니 당연한 일이지 싶다. 탑승 시는 다른 승객들보다 앞서 탑승함으로 다른 승객
들을 기다리게 했으나 도착해서는 제일 뒤에 내리므로 그 빚을 갚은 셈이 되었다. 잿빛으로 흐린 공항에 내려 우리는 기
다리던 버스에 올랐다. 30명 남짓한 인원을 태운 버스가 ‘밀알선교단’이란 싸인을 앞창에 걸고 개선장군처럼 이국의 정
취가 물씬 풍기는 아열대 섬의 초겨울 도로를 달려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투어를 시작하자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밀알을 섬기는 동안 수차 경험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
다. 밀알 나들이 때에 하나님은 늘 좋은 날씨로 우리를 맞아 주셨다고 기억하는 까닭이다. 스카이워터쇼를 시작으로 차례
로 볼거리들을 찾아 나섰는데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겨워하는 능주 형제에게 고공에서 낙하해 벼락 치듯 물속으로 처
박히는 이 신출귀몰한 사람들의 재주가 과연 어떻게 비쳤을지 자못 궁금하다. 나 같으면 이렇게 하나님께 물었을 듯하다.
“하나님 저 사람들과 나와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요?”언 듯 어처구니없는 질문처럼 생각되지만 왠지 예수님만은 그렇
게 생각지 않으신다고 말씀해 주실 것 같아 나는 문득 의기양양해졌다. ‘산굼부리’라는 분화구 주변의 억새밭 풍경은 단
연 압권이다. 뇌경색으로 편마비를 앓는 인숙 자매의 한쪽 팔을 잡고 나는 천천히 걸으며 이 놀라운 하나님의 연출에 깊이
매료되었다. 작은 바람에도 억새들은 백 마디의 환호로 화답하며 있는 대로 몸을 흔들어 대는 듯했다. 은빛으로 은은하던
꽃술 깊은 곳으로 노란 햇살이 다가가자 우려내듯 냉큼 황금빛으로 번지는 꽃술을 보며 나도 모르게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하며 노래했다. 아기 같은 수라는 엄마와 둘이 왔는데 내게는 전에 본 기억이 없는 새 얼굴이어서 관심이 갔
다. 무표정인 수라가 차차 나에게 눈길을 주고 친근함을 보이자 나도 따라서 아기같이 즐거운 마음이 되어갔다. 용기 형
제를 활동보조로 돕는 영임 자매는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따른다. 그는 솔선하여 밀알의 여러 사역에 참여하는데 언
젠가 이야기하는 중에 그녀에게도 장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쪽 팔이 의수인 그녀는 두 딸을 잘 키워서 다 출가를 시
켰고 아이들도 낳았다 하니 이미 할머니가 된 셈이다. 남편이 더없이 착한 성품을 지녔다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다가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자기가 오래전에 당한 사고를 들려주었다. 남편의 어려운 돈벌이를 돕느라 자매도 공장에 나가 일
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일이 프레스 금형으로 무슨 금속제품을 찍어내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 프레스 금형에 한쪽 팔이 잘리
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젊은 여자의 몸으로 한쪽 팔이 잘려져 나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겪으며 어떤 심정이었을지 나는
그 상황을 상상하며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전율했다. 76년을 살아오며 남의 아픔을 그때처럼 리얼하게 느낀 적이 있었을
까 싶다. 왜 그런 실감이 가능했는지 잘 알 수는 없으나 나는 그 이후로 이따금 그를 떠올리며 처연해지곤 한다. 그 남편
되는 사람이 아내에게 느끼는 죄책감과 사랑이 얼마나 깊을까? 매일 아내의 의수를 쓰다듬으며 속울음을 울 거라는 생각
에 오히려 내가 울컥해지는 감동을 느끼던 것이다. 밀알들과 지낸 2박3일이 내게는 또 하나의 은혜의 시간이었음을 고백
한다. 하나님 지으신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깨닫는 것은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접하므로 비로소 더욱 절실해지는
증거로 자리매김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선순환의 고리가 된다. 캠프 마지막 날 새벽, 숙소인 명성 아카데미 주변
숲속을 걸으며 묵상하며 기도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들꽃 하나도 낯설지 않다. 이생에 나그네로 와서 만난 것들
이 하나같이 다 귀한 것들로 바뀔 때 비로소 겸손을 배우는 것이다. 함께한 모든 밀알의 가족들에게 덕담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특별히 능주, 영한등 증세가 깊어지는 형제들과 이번 캠프에 결석한 모든 자매와 형제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아울러 조금도 자신의 장애에 굴하지 않고 매사 적극적으로 임하는 밀알의 보배 정용기 형제에게
박수를 보낸다. 반면교사의 롤모델로 모든 장애인들의 소망이 되기를 축원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하나님이 우리 밀알 식
구들에게 특별히 미안한 마음을 느끼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에 잡혀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신지라. 아멘!
2021년 12월 인천밀알보_ 5